“사람들이 광활한 빈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지점마다 희미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젊음이 바로 그 어두운 구석에 박제된 이야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하지만 내게는 너무 놀라웠던 이야기들을 추억으로 껴안고 살아갈 것이다.”(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중)
틴에이지 그룹이 한국의 대중음악을 점령해버린 1990년대 후반, 이른바 ‘언더음악’이라고 불리던 진영에서는
힙합의 매력에 빠진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었다. 5년 전까지 래퍼로 활동했던 손아람씨도 그중 하나였다.
힙합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이하 진말페)’에서 일명 ‘손전도사’로 불리며 클럽을 누볐다.
그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들녘)를 최근 펴냈다.
“그 시대를 기억하고 싶어서 소설을 썼죠. 20대의 일반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꼭 힙합 음악을 알리고자 한 건 아니고요,
한때의 열정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98년 결성된 ‘진말페’는 2003년까지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어머니’ ‘타다만 담배를 끄다’ ‘대학생은 바보다’ 등을 발표했다. 당시 제법 힙합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이들의 노래는 엠피3파일 등을 통해 인터넷에 돌고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또 현재도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조PD, DJ Uzi, 김도현, UMC 등 힙합뮤지션들도 등장한다.
손씨는 “책이 소설을 넘어 음악판 밑바닥에 대한 소소한 회고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심을 저버리지 못해서 실명으로 등장시켰다”고 했다.
손씨가 음악을 그만둔 것은 음반사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진말페’를 이용해 사기를 치려던 음반업자로 인해 결국 꿈을 접었다고 했다.
이후 멤버들은 학교로, 군대로, 이민 등을 이유로 뿔뿔이 헤어졌다.
“경험을 바탕으로 쓰려고 했는데 소설적 재미를 위해 몇 가지 설정을 바꿨죠. 저에 대한 설정도 허구가 많아요.
힙합에서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 집안환경이나 학력 등을 낮췄지만 제가 왼쪽 청력을 잃은 건 사실이에요.”
소설 발표 후 걱정되는 것은 ‘서울대생의 유희거리가 아니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음악활동을 할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멤버인 손씨(미학과)와 오혁근씨(재료공학과)가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씨는 IQ 148 이상인 천재들의 모임이라는 ‘멘사’ 회원이다.
“사실 음악보다 문학에 관심이 많아요. 오래 전부터 글을 써왔어요.
대중소설에 관심이 많고, 궁극적으로는 과학소설을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