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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MENSA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빛 바랜 추억의 기사 하나 찾아 올립니다.
조선일보 2000년 3월 27일
[SC현장르포] '천재' 빛과 그림자
천재-빛과 그림자
천재(天才).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
아이디어세상이 열렸기 때문일까.
바야흐로 명석한 두뇌가 대접받는 시대다.
더욱이 `벤처기업'의 확산과 함께 고급두뇌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두뇌=IQ인가. 고지능자들은 누구인가. 성공의 조건은 무엇이고 진정한 천재는 누구일까.
우리사회의 `별종집단'인 천재의 세계를 밀착 취재했다.
■한국의 천재집단
지난 98년 설립된 한국멘사.
대표적인 `천재들의 집단'이다. 회원 자격은 IQ 148 이상.
취재팀은 한국멘사 사무국장인 이찬희씨(42)를 첫 취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TV에 단골로 출연, 신기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중의 한명이다. 작년엔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채점감시관을 맡기도 했다. 컴퓨터가 계산한 결과를 최종승인하는 임무. 계산능력에 있어선 컴퓨터보다 우월하다는 걸 공인받은 셈이다.
"두뇌의 연산능력은 컴퓨터보다 빠릅니다."
이씨는 이 말을 입증해 보이겠다며 장난스럽게 취재진에게 아무 숫자나 적어보라며 말했다. 수첩에 백자리 숫자를 세로로 십여개 적은 뒤 "덧셈을 해보라"며 건네주었다. 이씨는 수첩을 받아 `보자마자' 정답을 말했다.
그는 억단위 덧셈 10개도 놀랍게도 5초 이내에 풀어냈다. IQ 148인 그는 반복훈련에 의해 연산능력을 고도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높은 지능이 빠른 연산의 비결임은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한국멘사엔 1200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한국멘사에서 실시하는 국제규격의 지능테스트(샘플문제 00면)는 36문항. 8문제 이상 틀리지 않으면 IQ 148이다.
연령별로 차이가 있지만 14~17세의 경우 다 맞추면 IQ 172. 멘사회원 중엔 지능테스트 만점을 받은 사람도 22명이나 된다. 그러나 이들에겐 IQ의 숫자가 별 의미가 없다. 172는 측정가능한 한계치일 뿐 200이 될지 250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172이상은 변별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편의대로 172라고 하는 것이다.
상위 2%에 해당하는 멘사회원은 전세계 75개국의 11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세계기록 보유자는 IQ 228의 미국인. 포드자동차 전회장 도널드 피터슨, 영화배우 지나 데이비스, 83년 미국 아추어 헤비급복싱 챔피언 헨리 밀리건이 멘사회원이다. `원초적 본능'의 샤론스톤도 150대의 고지능자로 알려져 있다.
■스타들과 지능지수
스타들의 지능은 과연 얼마나 될까? 취재팀은 수십여명에게 IQ를 질문했지만 수치를 공개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나마 자신들의 지능지수를 밝힌 사람들은 대체로 높은 편에 드는 경우였다.
이중 탤런트 류시원은 중학교때 140이라고 공개했다. 그는 여동생도 156이라며 집 사람들의 지능이 대부분 높다고 말했다. 탤런트 박선영은 여고 1학년때의 테스트에서 137, 가수 조성모와 탤런트 강성연은 각각 132.
스포츠스타 중에선 프로야구 선수 박재홍과 농구선수 서장훈이 대표적인 고지능자. IQ 140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박재홍은 전화통화에서 137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서장훈은 150대.
연예인중 공인된 최고 IQ의 소유자는 MC겸 리포터 류시현. 그녀는 지난 98년 8월 한국멘사의 테스트에서 152를 기록한 천재. 중학교때 150, 고등학교때 155의 지능을 기록했다. `판소리 신동' 유태평양군도 멘사테스트에서 상위 1%안에 드는 지능(156)을 보였다. 프로 기사 이창호는 139,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씨는 귀순당시 142로 나타났다.
하지만 IQ는 몰라도 자칭타칭 `천재'로 인정되는 스타들은 수두룩하다. 주니치 선수였던 선동열은 상대방의 고스톱패까지 외울 정도로 연산능력과 심리추측이 뛰어나다.
탤런트 하희라는 암기력의 천재. 그녀는 98년 KBS 1TV 일일연속극 `정때문에'에 출연할 때는 녹화장으로 배달된 대본을 즉석에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대 동료연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스포츠계에서 이른바 `천재'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이종범, 허재, 고종수. 이들은 자신들의 IQ를 모른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해당분야에서 만큼은 이들에겐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며 뛰어난 능력을 인정했다.
연예인중 가히 높지 않은 지능을 공개한 사람은 스타 개그맨 심현섭과 박경림. 고교시절 심현섭은 109, 박경림은 107이었지만 EQ만은 최고였다고 자부했다. 특히 고교시절 남 웃기는 공상에 파묻혀 지냈다는 심현섭은 "JQ(잔머리 지수)만은 200은 족히 될 것"이라며 개그맨답게 익살을 떨었다. 이들은 IQ로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는 것은 회의적이라는 시각이었으며, 인생의 성공은 다른 요인에 의해 더 좌우될수 있음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천재의 명암
드라마 `허 준'에서 허 준은 천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홍재씨(49)는 침 하나로 세계에 박애를 실천하는 가히 `현대판 허 준'이다.
IQ 156. 인구비례 상위 1% 안에 드는 최고수준 지능의 소유자인 이씨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 미술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온 영재였다. 18세때 우연한 기회에 침술을 배운 후 자신의 재능을 침술에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96년부터는 인도, 네팔 등지에 30개의 무료침술센터와 6개의 침술교육대학을 세웠다. 97년엔 인도에서 고 테레사수녀를 만나 `위대한 의료인'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윤형식씨(30). 멘사의 벤처팀 팀장이자 벤처기업 `에이스인터넷' 기획실장인 그는 지난 12일 새로운 사업설명회를 가져 엔젤투자자로부터 하루만에 150억원의 투자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가 제안한 사업은 이메일과 홈페이지를 통해 포인트를 적립시키는 새로운 개념의 포인트 포털 비지니스 서비스다. 7억공모가 목표였지만 하룻만에 150억원의 투자약속을 받아낸 것은 유례가 없는 일. 취재팀이 그의 IQ를 물어보자 "그저 편의상 160이라고만 해둡시다"고 말했다.
지능지수 174. 초등학교졸업이 전부. 지난 2월 `인터넷 사기 주식공모'로 검거된 차지혁. 그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작년 9월 카드사업을 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주식청약신청을 받았다. 개설 40여분만에 20만여건의 조회실적을 올리며 600여명의 투자자들로부터 7억7000만원의 투자약속을 받아냈다.
차지혁은 90년대부터 이미 재계에 숱한 화제를 뿌린 인물이었다. 단돈 2만2000원으로 자동차 대행업체 `트리피아'를 세워 90년 첫해엔 매출 15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97년엔 한 중학생의 해킹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중3 졸업반이었던 K군은 "고교입학기념으로 영원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4만여명의 PC 통신사용자들의 통신자료를 삭제하는 해킹범죄를 저질렀다. K군 역시 IQ 148에 전교 1,2등을 다퉜던 영재 학생이었다.
지능범의 검거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희대의 사기꾼과 절도범 중엔 고지능자가 상당히 많음을 감안할때 천재는 사회의 등불이 될수도 있지만 독이 될수도 있다는 반증이다.
. 벌써부터 투자자들이 줄을 서 당장 300억 이상의 투자공모는 문제없을 것이라 한다.
■두뇌의 세계
자연연령(나이) 대비 정신연령을 뜻하는 IQ(Intelligence Quotient)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수치로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IQ의 결정요인에 대해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최근에는 성장환경보다는 유전적 요인이 보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굳혀져 가고 있다. 대략 50∼60%정도로 보고 있지만 미 하버드대학에서는 80%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학설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97년 카네기 멜런및 피츠버그대 합동연구소는 출생전 태내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뇌의 발달이 70%이상 완성되는 최초 1년의 환경이 보다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유전자결정설'과 `환경결정설' 어느 편을 막론하고 태내교육(태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과 유전적 요소와의 관련성을 해명하는 연구는 인간염색체의 배열과 특질을 밝혀 염색체지도를 완성하려는 `게놈프로젝트'나 `분자유전학'과 궤를 같이하면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연구는 활기를 띠고 있다. 취재팀은 유전자와 인간행동의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의 박찬규 박사(분자유전학)와 안태호박사의 대전 연구실을 찾았다.
박찬규박사는 "인간 지능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여러개라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에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게놈프로젝트가 거의 완료되어감에 따라 지능과 유전자의 관련성을 밝혀내는 인지과학분야도 2∼3년 내에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안태호박사는 높은 지능의 소유자와 일반인들의 유전자배열을 비교하는 작업을 국내최초로 진행시키고 있다. 높은 지능인의 실험모델로는 멘사회원들이 선택됐다. 그는 멘사회원들의 머리카락을 표본으로 채취해 특수유전자들을 발견해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박사는 만약 이 작업이 완성된다면 `영재교육'에 있어서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의 `IQ테스트'와는 달리 정확하고 객관적인 `생물학적인 근거'로 영재를 판별해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지능에 관여하는 특수유전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적 재능, 운동능력 등을 독립적으로 관할하는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 이른바 `다지능이론'이다. 미래 언젠가는 `피 한방울' 또는 `머리카락 한올'로도 한 개인의 잠재적인 모든 능력과 행동특성을 파악하게 될수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영재교육과 천재들의 그 이후
영재의 부모들은 대부분 그들의 자녀들이 공개되길 꺼려했다.
매스컴의 조명을 받았다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다. 97년 IQ 160의 천재소년으로 화제가 됐던 J군(14)이 대표적인 사례. 전남 구례출신인 그는 영재성을 인정받아 서울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2학년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J군은 `끊임없이 질문해 수업분위기를 망치는 아이'로 묘사돼 있다.
영재들의 경우 학교교육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작년 1차 고졸검정고시 최연소합격자인 지능지수 157의 K군(당시 13세)도 초등학교때부터 외톨이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한국최고의 두뇌로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K씨와 J군 등도 검정고시를 거쳐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계자들은 영재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교육이 아니라 영재들을 꾸준히 관찰 지도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관련 작년 12월16일 국회를 통과해 2002년 3월1일부터 발효되는 영재교육 진흥법은 뒤늦은 감이 있다. 국가가 영재학교를 설립할수 있고, 시@도의 교육청과 학교 등 공인법인은 영재학급을 운영할수 있으며, 국가가 시@도 단위로 영재교육진흥위원회를 만들어 영재교육을 지원하는게 그 요체. 세계 각국이 1970년대 부터 국가차원의 영재교육 정책을 수립해 운영해온 반면 우리는 사설기관에 의지해 온 게 현실.
영재교육의 미비로 인한 `똑똑한 아이'들의 수난과 좌절은 멘사회원들의 입을 통해서도 쉽게 드러난다.
그 자신도 대학중퇴의 이력을 갖고 있는 멘사회원 윤형식씨(30)는 "멘사에는 유난히 정규학교 중퇴자와 검정고시출신이 많다"고 말한다. 대부분이 `창의력을 억압하는 학교교육'과 `흥미를 주지않는 수업'때문이라고 한다.
98년 최연소 멘사회원으로 화제가 됐던 J양(18)도 그런 경우다. 수학과 과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녀의 지적 욕구를 입시위주의 교육은 전혀 만족시킬 수 없었다. J양은 지난 98년 다니던 고교를 자퇴했다.
국내 정규교육에 결국 적응하지 못한 영재가 미국 명문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경우도 있다. 고교 내신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진학이 어려웠던 이건호군(18)은 작년 미국 학업적성검사에서 만점으로 MIT에 입학했다. 국내 영재교육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지능은 만능인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주범 신창원. 사실상 경찰인사를 주도했던 그의 지능은 103.
그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엔 `학습엔 무관심하다'라고 씌여있다. 하지만 운동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묘사돼 있다. 성인이 돼 100m를 12초대에 끊고 2단 줄넘기를 3시간 이상 할 정도의 체력을 갖춘 그는 `도주의 천재'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IQ는 학업성적과도 정비례하지 않는다. 지능과 석차의 상관관계는 16∼49% 라는게 정설. 1971년 각종 취업때 IQ를 사정기준으로 채택하는 불법화한 미국 대법원은 `고도의 능력은 복합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IQ 85∼145면 학습에 지장이 없고, 100이든 130이든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일부 학자들의 견해.
96년 서울대 수석합격자인 장승수씨도 IQ가 113으로 공개돼 수많은 범재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초@중@고교를 평범한 성적으로 다닌 그가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것은 피나는 노력이 비결이었던 셈이다.
IQ와 성공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는 미국도 허다하다. 미 레이건 대통령도 EQ는 높아도 IQ는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평범한 지능의 유명인들도 적지 않다. 외국에선 IQ테스트가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며, EQ를 비롯해 LQ(지도력지수), SQ(사회성 지수) 등이 속속 등장하는 것도 IQ가 인간능력을 판단하는 절대 잣대는 아니라는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다.
■취재후기
IQ가 높다는 것은 행운이다. 취재팀이 만나본 수많은 고지능자들은 확실히 학습능력에 있어 탁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뚜렷한 그들의 특징은 강한 자신감과 우월감, 그리고 독특한 개성이었다.
평준화, 제도화되거나 억누르는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는 그 개성이 빛을 잃은 건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지능이 높은 사람만이 행복과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고지능자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그들에겐 IQ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불굴의 도전정신,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인류애, 아픔과 좌절을 견뎌내는 인내심 등 수치로는 도저히 표현할수 없는 요소들이다.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은 개성을 특화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그 개성은 어쩌면 IQ와는 무관한 것이 아닐까.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양심과 도덕심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위해 끊임없이 몰두하고 노력하는 자. 그런 사람들을 이젠 진정한 천재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다.
취재과정에서 우연히 취재팀의 손에 들어온 가드너의 `비범성의 발견'이라는 책의 한 구절은 숱한 천재들의 `비범성'을 분석한 결과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당신이 축복받았건 저주받았건 당신의 독특한 점을 찾아내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라. 그리고 많은 경험을 쌓아라. 그것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되고 자신을 자극할 수 있다."
[SC 현장 르포팀]
이유현 기자 youlee@
송원섭 기자 fivecard@
조병관 기자 rainmaker@
이형석 기자 evol9099@
이영주 기자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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